모산학술재단         모산학술연구소

김흥규박사 발표(모산 심재완박사 8주기 추모행사 2019.11.16)


<역대시조전서>, <고시조대전> 편찬과 시조사의 역동성

 

김흥규(金興圭)

 

 

지금까지의 내 학문 생애에서 각별하게 보람을 느끼는 대과업을 누가 묻는다면, 나는 별로 망설임 없이 <고시조 대전>(2012)의 편찬을 들 것이다. 20년여의 작업 끝에 고시조 46,000여 건과 관련 정보들을 집성, 정리한 이 자료집으로써 우리 학계는 시조 연구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책임편찬자인 나와 6인의 공동편자(이형대, 이상원, 김용찬, 권순회, 신경숙, 박규홍 교수)들이 바친 노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분야 편찬 사업의 선구적 업적으로 우뚝하게 서 있는 <교본 역대시조전서>(1972)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후속 작업이며, 모산 심재완 선생의 학문적 혜안과 선례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의 강연을 통해 나는 이 두 가지 업적 사이의 관계를 살펴 보면서, 모산 선생이 끼친 학문적 영향과 그 발전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내가 모산 선생의 <역대시조전서>를 처음 접한 것은 계명대 전임강사로 부임한 1976년 경이었다. 당시까지 나는 현대시가 전공이었으나, 한국시 운율론을 위해 시조 자료들을 조사하고자 <역대시조전서>를 활용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모산 선생의 서문을 읽으면서 나는 학문 생애의 대부분을 시조 자료 수집과 연구, 정리에 바친 그분의 사명감과 노고에 크게 감명받았다. 하지만 현대시 연구자인 나로서는 먼 훗날 이런 계열의 후속 작업에 관여하리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인생 행로에는 때때로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작용한다. 나는 1979년 가을에 모교인 고려대의 부름을 받아 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이때 내가 담당하는 전공 영역이 고전시가와 비평사로 재조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고전시가 중에서도 가장 자료가 풍부한 시조가 이후의 내 연구와 강의에서 중심을 차지했다. 그러니 <역대시조전서>가 언제나 내 책상 가까운 곳에 있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1980년대를 지나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역대시조전서>는 여전히 내게 소중했으나, 이런저런 아쉬움과 불편도 뚜렷해졌다. 이 책이 간행된 1970년대 초 이후 발견된 다량의 자료들이 반영되지 못한 점이 무엇보다 큰 문제였고, 작품군의 구성 체계라든가 참조 정보의 제공 면에서도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모산 선생이 이 책을 편찬하던 시기는 카드와 원고지에 모든 자료를 기록하여 분류, 정리, 가공하던 시대였고, 그 결과를 납활자로 조판해서 출판해야 했다. 따라서 수작업에 의한 정보 처리의 불편과 인력, 시간상의 여건에 구속받는 것이 불가피했다.

1990년대 초기의 정보 환경은 컴퓨터에서 상당량의 한자와 옛한글의 입출력까지 어지간히 가능한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변화에 일찍 눈뜬 <한국어 전산학회> 창립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시조 자료의 정리와 분석에도 컴퓨터를 활용해 보자는 착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시조전서>을 대신할 만한 대규모 자료집을 새로 편찬하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뚜렷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착수한 첫 번째 시조 자료 작업은 약 700여 수의 사설시조 본문과 작품별 키워드, 서지 정보, 유형 정보 등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다각도로 분석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꽤 유익한 성과를 거두면서, 자료 범위가 고시조 전체로 확대되고 1990년대 후반에는 전산화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하여 새로운 시조 자료집을 편찬하는 과업이 본격화되기에 이르렀다.

2000년 이후는 이와 같은 작업이 원전 자료의 수집, 정리, 입력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운영 등에 걸쳐 체계화된 시기에 해당한다. 그 과정을 헤쳐가는 동안의 난관과 고생 역시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심재완 선생이 <역대시조전서>를 수작업으로 편찬하던 시대의 고초가 어떠했을까를 되새기며 내 자신과 작업자들을 위로하고는 했다. 컴퓨터가 모든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입력된 자료의 정리, 가공, 분석, 재구성 등에서 언어정보 처리의 여러 기법과 장비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학문적 생산성 면에서 획기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129, 착수한 때로부터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에 <고시조대전>이 완성되었다. 이 책을 선행 업적인 <역대시조전서>와 수량 면에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시조 자료 수

작품 유형 수

하위 군집 수

 첨부파일
(특별기고)김흥규.pd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