甁窩 李衡祥의 삶과 학문
박규홍*
병와 이형상(1653-1733)의 10대조는 孝寧大君, 즉 太宗의 2남이자 세종대왕의 둘째 형이다. 병와 선생은 내직 4년, 외직 8년의 宦路를 걸으면서 강직한 관리, 청렴하고 유능한 목민관으로 남다른 활동을 펼쳤을 뿐 아니라 평생을 학문에 진력하여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1979년에는 그의 저서 중 10종 15책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중 1998년 제주시에서 매입한 『탐라순력도』는 국보로 지정될 전망이다. 나머지 9종 14책은 병와 선생이 1700년부터 1728년까지 은거했던 영천 浩然亭의 遺稿閣에 보관되어 있다. 1982년에는 인장 23과, 호패 9점 등 유품 12종 59점이 중요민속자료 제119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병와 선생은 방대한 분량의 遺稿로 누구보다도 뚜렷한 삶의 족적을 남겼다. 1770년(영조 46) 樊巖 蔡濟恭(1720-1799)이 쓴 「甁窩先生李公行狀」에는 병와 선생의 생애가 잘 요약되어 있다. 이 行狀에서 떠올릴 수 있는 剛直ㆍ原則ㆍ愛民ㆍ寬容ㆍ淸廉ㆍ勤勉과 같은 몇 개의 핵심어로 선생의 ‘삶의 태도’를 조금이나마 살펴보도록 한다.
大山 李象靖(1710-1781)은 『甁窩先生文集』의 발문에서 병와 선생이 性理學은 물론 天文ㆍ地志ㆍ禮樂數書ㆍ幽經僻書ㆍ稗史小說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관통하여 밝지 않음이 없었다**고 했다. 大山의 말처럼 병와의 학문은 매우 폭이 넓다.
甁窩 遺稿에 대한 연구는 1958년 慕山 沈載完의 논문 「甁窩歌曲集의 硏究」를 필두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78년 권영철은 단행본 『병와 이형상 연구』를 발간했다. 초기의 거보를 내디뎠다고 할 만하다. 이후 40여 년, 수십 편의 논문이 나왔으나 병와 선생 학문의 깊이를 가늠할 만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선생의 학문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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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와연구소 소장, 전 경일대학교 교수
** 『甁窩全書』 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3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