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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학술연구소

제목

김흥규박사 발표(모산 심재완박사 8주기 추모행사 2019.11.16)

작성자
모산학술재단
작성일
2019.12.26
첨부파일1
조회수
1555
내용


<역대시조전서>, <고시조대전> 편찬과 시조사의 역동성

 

김흥규(金興圭)

 

 

지금까지의 내 학문 생애에서 각별하게 보람을 느끼는 대과업을 누가 묻는다면, 나는 별로 망설임 없이 <고시조 대전>(2012)의 편찬을 들 것이다. 20년여의 작업 끝에 고시조 46,000여 건과 관련 정보들을 집성, 정리한 이 자료집으로써 우리 학계는 시조 연구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책임편찬자인 나와 6인의 공동편자(이형대, 이상원, 김용찬, 권순회, 신경숙, 박규홍 교수)들이 바친 노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분야 편찬 사업의 선구적 업적으로 우뚝하게 서 있는 <교본 역대시조전서>(1972)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후속 작업이며, 모산 심재완 선생의 학문적 혜안과 선례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의 강연을 통해 나는 이 두 가지 업적 사이의 관계를 살펴 보면서, 모산 선생이 끼친 학문적 영향과 그 발전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내가 모산 선생의 <역대시조전서>를 처음 접한 것은 계명대 전임강사로 부임한 1976년 경이었다. 당시까지 나는 현대시가 전공이었으나, 한국시 운율론을 위해 시조 자료들을 조사하고자 <역대시조전서>를 활용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모산 선생의 서문을 읽으면서 나는 학문 생애의 대부분을 시조 자료 수집과 연구, 정리에 바친 그분의 사명감과 노고에 크게 감명받았다. 하지만 현대시 연구자인 나로서는 먼 훗날 이런 계열의 후속 작업에 관여하리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인생 행로에는 때때로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작용한다. 나는 1979년 가을에 모교인 고려대의 부름을 받아 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이때 내가 담당하는 전공 영역이 고전시가와 비평사로 재조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고전시가 중에서도 가장 자료가 풍부한 시조가 이후의 내 연구와 강의에서 중심을 차지했다. 그러니 <역대시조전서>가 언제나 내 책상 가까운 곳에 있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1980년대를 지나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역대시조전서>는 여전히 내게 소중했으나, 이런저런 아쉬움과 불편도 뚜렷해졌다. 이 책이 간행된 1970년대 초 이후 발견된 다량의 자료들이 반영되지 못한 점이 무엇보다 큰 문제였고, 작품군의 구성 체계라든가 참조 정보의 제공 면에서도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모산 선생이 이 책을 편찬하던 시기는 카드와 원고지에 모든 자료를 기록하여 분류, 정리, 가공하던 시대였고, 그 결과를 납활자로 조판해서 출판해야 했다. 따라서 수작업에 의한 정보 처리의 불편과 인력, 시간상의 여건에 구속받는 것이 불가피했다.

1990년대 초기의 정보 환경은 컴퓨터에서 상당량의 한자와 옛한글의 입출력까지 어지간히 가능한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변화에 일찍 눈뜬 <한국어 전산학회> 창립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시조 자료의 정리와 분석에도 컴퓨터를 활용해 보자는 착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시조전서>을 대신할 만한 대규모 자료집을 새로 편찬하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뚜렷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착수한 첫 번째 시조 자료 작업은 약 700여 수의 사설시조 본문과 작품별 키워드, 서지 정보, 유형 정보 등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다각도로 분석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꽤 유익한 성과를 거두면서, 자료 범위가 고시조 전체로 확대되고 1990년대 후반에는 전산화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하여 새로운 시조 자료집을 편찬하는 과업이 본격화되기에 이르렀다.

2000년 이후는 이와 같은 작업이 원전 자료의 수집, 정리, 입력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운영 등에 걸쳐 체계화된 시기에 해당한다. 그 과정을 헤쳐가는 동안의 난관과 고생 역시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심재완 선생이 <역대시조전서>를 수작업으로 편찬하던 시대의 고초가 어떠했을까를 되새기며 내 자신과 작업자들을 위로하고는 했다. 컴퓨터가 모든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입력된 자료의 정리, 가공, 분석, 재구성 등에서 언어정보 처리의 여러 기법과 장비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학문적 생산성 면에서 획기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129, 착수한 때로부터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에 <고시조대전>이 완성되었다. 이 책을 선행 업적인 <역대시조전서>와 수량 면에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시조 자료 수

작품 유형 수

하위 군집 수

역대시조전서(1972)

23,159

3,335

구분 않음

고시조대전(2012)

46,431

5,563

6,845


<역대시조전서><고시조대전>19세기 말까지의 문헌에 출현하는 시조를 모두 수집하여 같은 작품의 미세한 변이형이라 판단되는 것을 하나의 유형으로 묶되, 그들 사이의 한두 글자 차이도 확인할 수 있도록 모든 원문을 망라하여 제시하는 자료집이다. 위의 비교표에 보듯이 <역대시조전서>는 시조 23,159건을 모아 3,335개 유형으로 정리했고, <고시조대전>은 시조 46,431건을 집성하여 5,563개의 유형으로 나누었다. 두 자료집 사이에 4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자료 수가 두 배 정도로 늘어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두 자료집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위의 표에 밝힌 하위 군집의 유무에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역대시조전서>는 시조 작품들을 유형이라는 단위로만 묶는 단층(單層) 구조를 취한 데 비해 <고시조대전>유형군집이라는 상하관계의 복층(複層) 구조를 도입했다. 여기서 말하는 군집이란 동일한 작품 유형에 속하되, 같은 유형 안에서 내용 및 표현에 차이를 보이는 시조들이 2개 이상의 하위 그룹으로 분화된 경우를 가리킨다. 시조 작품들은 여러 세기의 향유, 전승 과정을 거치면서 텍스트의 미세한 변화를 겪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형 내부의 군집 분화가 발생하기도 했던 것이다.

심재완 선생은 <역대시조전서>를 편찬하면서 이런 사례들을 상당수 발견하고 고심했던 듯하다. 예컨대, <역대시조전서>#2356 유형(‘이시렴 부디 갈다’)25건의 이본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번 앞에 라고 표시된 이하의 6수는 그 앞의 19수와 비교하여 텍스트 상의 차이가 상당하다. 라는 표지 이후의 작품들은 해당 유형에 속하되 상당히 주의해야 할 변종(變種)으로 간주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대시조전서>는 이런 변종들을 좀더 정밀하게 식별하고 명료하게 처리하기 위한 구조적 설계를 마련하지 않았다. 카드 작업으로 수만 건의 시조를 모은 뒤 수천 종의 유형으로 묶고 배열하는 일이 너무도 복잡했기에 더 이상의 세분된 설계는 그 시대에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고시조대전>유형-군집이라는 복층 구조는 이렇게 남겨진 <역대시조전서>의 과제에 대해 40년 뒤의 응답이 된 셈이다. 위에 예시한 이시렴 부디 갈다<고시조대전>#4109 유형인데, 이 부류의 작품은 총 49수가 수집된 가운데 그 변종들이 7개의 하위 군집으로 식별되었다. 그 중에서 내용과 표현상의 거리가 가장 먼 군집 대표작 둘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4109.1 (성종이 지었다는 원래의 작품)

이시렴 브갈다 아니 가든 못ㅎ쏘냐

무단이 슬터냐 의 말을 드럿

그려도 하 애도래라 가 을 닐너라

 

#4109.5 (19세기 초기 가집 <청구영언 연민본>에 실린 변종)

어이여 가랴고 무일노 가랴

무단이 슬흐던가 뉘 말을 드르신가

져 님아 말만 결단 리라

 

5세기에 걸친 시조사는 수만 건의 텍스트 속에서 이런 변종이 생겨나고 얽히면서 전개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고시조대전>이 설계한 개별작품-군집-유형의 복층 구조는 이런 역동성을 추적하고 해명하는 데 긴요한 토대가 될 것임을 감히 자부한다. 그러나 이런 발전 역시 백지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심재완 선생이 <역대시조전서>에서 작품 유형 내부의 이본들에 대해 고심하던 자취를 발견하고, 30~40년 뒤의 환경 속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궁리한 결과다. 그런 점에서 <고시조대전>의 발전적 창안조차도 심재완 선생의 선구적 작업과 고뇌에 힘입은 바 적지 않음을 밝히면서, 그 드높은 공헌과 학덕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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